테니스는 13세기 경에 프랑스의 왕후귀족들이 다과회나 연회 등의 행사로서 거행하고 있던 '쥬디홈'이라는 실 내 유희가 그 기원이 되었다.
이 유희는 최초에, 실내에서 줄을 치고 머리칼을 뭉뚱그린 공을 서로손으로 쳐서 보내는 간단한 게임으로, 왕후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놀이였는데, 한때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루이 10세가 금지령을 내렸었다고 한다. 황후귀족의 놀이로서 정착된 쥬디홈은 그 후 용구 등이 고안되어 네트와 라켓도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16~17 세기에 영국에 전해져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유희(로얄게임)로서 보급되어 갔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에서는 일부 전문화된 테니스 직업인(예능인)이 생겨나, 시합을 관전하면서 내기를 걸어 흥을 돋우는 귀족이 없지 않아 그 폐단을 막기 위해 한때 금지 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 유희의 좋은 점을 인정하는 순수한 애호가들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져 오늘날의 테니스로 발전하기에 이르었다.
현대 테니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73년의 공식적인 100주년 기념제는 1873년 북웨일스 출신의 W.C. 윙필드 소령에 의한 이 경기의 도입을 축하한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경기가 이전에도 있었고, 또 최초의 테니스 클럽이 1872년 리밍턴에서 해리 젬과 몇몇 그의 동료들에 의해 조직된 것으로 결론짓고 있지만, 윙필드는 1873년 경기규칙에 관한 최초의 책을 발간했으며 이듬해에는 경기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윙필드의 코트는 배드민턴 경기에서 이용되었던 것과 같은 모래시계 모양이었다. 그의 저서 〈스파이리스티케 또는 론 테니스 Sphairistiké, or Lawn Tennis〉가 발간된 후 일단의 사람들이 경기의 발명자임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들의 경기장은 대부분 직4각형이었다. 당시 메릴레번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MCC)은 리얼 테니스의 관리단체였는데, 그들의 경기규칙은 최근에 개정되었다. 뛰어난 리얼 테니스 선수인 J.M. 히스코트가 고무를 흰 플라넬로 싼 좀더 개량된 테니스 공을 개발한 후 MCC는 1875년 테니스를 위한 일련의 표준화된 규칙을 제정했다.
한편 이 경기는 1870년대에 미국으로 전파되었는데, 뉴욕의 메리 아우터브리지가 스탠튼 섬의 크리켓과 야구 클럽의 감독인 그녀의 형제에게 라켓과 공을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연구에 의하면 매사추세츠 주 내핸트의 윌리엄 애플턴이 론 테니스 장비를 갖고 있었으며, 그의 친구들인 제임스 드와이트와 프레드 시어스가 널리 퍼뜨렸다고 한다.
올잉글랜드 크로케 클럽(All-England Croquet Club)이 윔블던에 있던 잔디구장의 하나를 테니스 전용구장으로 바꾸기로 한 결정은 테니스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후 이곳의 테니스는 매우 인기가 있어 이 클럽의 명칭은 올잉글랜드 크로케 앤드 론 테니스 클럽(All-England Croquet and Lawn Tennis Club)으로 바뀌었다. 1877년 이 클럽은 테니스 선수권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고 3명의 선수권대회 소위원을 임명했다. 또한 구장의 규격을 길이 23.77m, 너비 8.23m의 직4각형으로 정하고 실제적인 경기 득점방법(15, 30, 40, 게임)을 채용했으며 서버(server)에게 1폴트(fault)를 허용했다. 이러한 결정은 현대의 경기규칙으로 남아 있다. 22명이 참가한 윔블던 선수권대회의 첫 우승자는 스펜서 고어였다. 1878년에는 스코틀랜드 선수권대회가, 1879년에는 아일랜드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1880년 올잉글랜드 클럽과 MCC가 현재 쓰이고 있는 것과 거의 유사한 개정된 경기규칙을 출판하기까지는 경기규칙에 몇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 당시에는 올잉글랜드 클럽이 주도 세력이었으며 브리티시 론 테니스 어소시에이션(British Lawn Tennis Association/LTA)은 1888년에야 조직되었다. 1880년에는 최초의 미국선수권대회가 스탠튼 아일랜드 크리켓 앤드 베이스볼 클럽에서 열렸으며, 우승자는 영국의 O.E. 우드하우스였다. 미국에서 테니스가 대중화되고 경기규칙에 자주 문제가 생기자 1881년 전미(全美) 론 테니스 협회가 창설되었고 후에 미국 론 테니스 협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75년에는 미국 테니스 협회(USTA)로 개칭했다. 이 협회의 후원 아래 1881년 영국 규칙에 따른 첫번째 공식 전미선수권대회가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의 뉴포트카시노에서 열렸다. 이 대회의 우승자인 리처드 시어스는 미국선수권대회를 7년 연속 우승했다. 188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테니스가 깊이 뿌리를 내렸고, 1905년에는 최초의 오스트레일리아 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886년에는 전뉴질랜드 선수권대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1904년에는 오스트랄라시아(뒤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바뀜) 론 테니스 협회가 창설되었다.
최초의 전프랑스 선수권대회는 1891년 스타드프랑세에서 열렸는데 이것은 단지 클럽간의 토너먼트였으며, 이 대회가 국제적인 경기로 성장한 것은 1925년부터였다(→ 프랑스 선수권대회). 프랑스 론 테니스 연맹은 1920년에 설립되었다. 그밖에 선수권대회가 개최된 국가는 캐나다(1890)·남아프리카(1891)·스페인(1910)·덴마크(1921)·이집트(1925)·이탈리아(1930)·스웨덴(1936) 등이다. 1884년에는 여자선수권대회가 윔블던에 도입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전국여자선수권대회가 1887년부터 개최되었다(→ 스포츠기록 : 테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