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협회는 1905년경 해체되었지만 그후에도 탁구는 런던을 제외한 영국의 일부지역에서 계속 행해졌고 1920년대에는 이미 많은 국가로 전파되어 있었다. 1926년 독일·영국·헝가리 대표들이 주도하여 국제탁구연맹(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ITTF)을 창설했으며, 초대 회원국은 잉글랜드·스웨덴·헝가리·인도·덴마크·독일·체코슬로바키아·오스트리아·웨일스 등이었다. 1980년대에는 회원국이 110개 이상으로 늘었다.
배드민턴의 역사(영국)
1. 세계 배드민턴의 역사
배드민턴의 유래는 그 기원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9세기 전반부터 인도의 봄베이 주 후나 부근에서 하고 있던 '푸나(Poona)'라는 게임이 1873년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 육군장교에 의하여 영국본토에 전해졌다.그 당시의 푸나 게임은 코르크로 만든 볼에 새의 깃털을 꽂아 그것을 손바닥이나 빨래 방망이(Battledore)로 쳐서 넘기는 게임이었다고 한다.
그로세스커셔 주에 있는 뷰포트경의 영저인 배드민턴에서의 홈파티 석상에서 이 육군장교는 푸나 게임을 소개하기 위하여 샴페인 병의 코르크마개에 날개를 붙인것을 테니스라켓으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거니 받거니 쳐보였다.
사람들이 이 놀이에 곧 열중하게 되어 새로운 스포츠가 탄생하게 된 것인데 이 스포츠의 이름을 영저의 이름을 따서 배드민턴으로 붙였다.
1934년 배드민턴을 관장하는 세계기구인 국제 배드민턴 연맹(IBF)이 조직되었다. 본부는 영국 글로스터셔 주 첼튼엄에 있다. 여러 나라에서 많은 지방대회, 전국 규모의 대회, 지역대회가 열린다. 이런 시합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전영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이다. 그밖에 널리 알려진 국제대회로는 남자단체경기인 토머스 컵(1939 기증)과 여자단체경기인 유버 컵(1956 기증)이 있다. 1934년 배드민턴을 관장하는 세계기구인 국제 배드민턴 연맹(IBF)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푸나경기는 영국 글로스터셔주의 뷰포트 공작이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방법을 정리하여 게임의 명칭을 자신의 저택 이름인 "배드민턴(Badminton)"으로 정하면서 영국 전역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893년 이후로 그 해에는 아일랜드 배드민턴협회가 창설되었으며, 이로 인해 배드민턴이 활발하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경기규칙이 통일되었고 경기기술도 상당히 발전하였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간의 국가대항 경기가 시작된 1902년 이후에는 배드민턴이 세계 여러나라에 보급되었으며 1934년 세계 배드민턴연맹이 창설되었다. 1939년에는 국제 배드민턴 규칙이 제정, 1948년 제1회 세계 남자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1956년에는 제1회 세계 여자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올림픽에서의 배드민턴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 때 시범종목으로 실시하였으며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대회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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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의 배드민턴 역사
우리나라에는 8.15해방후에 이 스포츠가 들어왔다. 우리나라는 1945년 YMCA를 통하여 배드민턴이 처음으로 보급되어 1957년 배드민턴 협회가 창설되었다. 배드민턴은 1962년 대한체육회 정식 산하단체로 가입, 전국체육대회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1966년부터 제5회 방콕아시아 경기대회를 시작으로 1969년 제2회 아시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 1970년 제6회 방콕아시아 경기대회, 1971년 제4회 아시아 배드민턴 선수권대회, 1977년 제1회 세계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등 국제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으로 거두었다. 1980년대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의 배드민턴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1981년 제71회 전영 배드민턴 선수권대회에서 여자단식이 우승하였으며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여자복식을 우승하였다. 이후에도 198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에서 우승하였으며 1986년 제76회 전영 오픈 여자단식, 여자복식에서 우승하였다.
1990년 이후에는 일본오픈, 코리아오픈, 말레이지아오픈, 전영오픈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특히 배드민턴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복식과 여자복식에서 우승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의 배드민턴은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으며 세계 스포츠계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효자(孝子)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테니스는 13세기 경에 프랑스의 왕후귀족들이 다과회나 연회 등의 행사로서 거행하고 있던 '쥬디홈'이라는 실 내 유희가 그 기원이 되었다.
이 유희는 최초에, 실내에서 줄을 치고 머리칼을 뭉뚱그린 공을 서로손으로 쳐서 보내는 간단한 게임으로, 왕후귀족이나 상류계급의 사람들에게 한정된 놀이였는데, 한때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했기 때문에 루이 10세가 금지령을 내렸었다고 한다. 황후귀족의 놀이로서 정착된 쥬디홈은 그 후 용구 등이 고안되어 네트와 라켓도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16~17 세기에 영국에 전해져서,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왕실의 유희(로얄게임)로서 보급되어 갔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에서는 일부 전문화된 테니스 직업인(예능인)이 생겨나, 시합을 관전하면서 내기를 걸어 흥을 돋우는 귀족이 없지 않아 그 폐단을 막기 위해 한때 금지 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 유희의 좋은 점을 인정하는 순수한 애호가들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져 오늘날의 테니스로 발전하기에 이르었다.
현대 테니스의 기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1973년의 공식적인 100주년 기념제는 1873년 북웨일스 출신의 W.C. 윙필드 소령에 의한 이 경기의 도입을 축하한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이와 유사한 경기가 이전에도 있었고, 또 최초의 테니스 클럽이 1872년 리밍턴에서 해리 젬과 몇몇 그의 동료들에 의해 조직된 것으로 결론짓고 있지만, 윙필드는 1873년 경기규칙에 관한 최초의 책을 발간했으며 이듬해에는 경기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윙필드의 코트는 배드민턴 경기에서 이용되었던 것과 같은 모래시계 모양이었다. 그의 저서 〈스파이리스티케 또는 론 테니스 Sphairistiké, or Lawn Tennis〉가 발간된 후 일단의 사람들이 경기의 발명자임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그들의 경기장은 대부분 직4각형이었다. 당시 메릴레번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MCC)은 리얼 테니스의 관리단체였는데, 그들의 경기규칙은 최근에 개정되었다. 뛰어난 리얼 테니스 선수인 J.M. 히스코트가 고무를 흰 플라넬로 싼 좀더 개량된 테니스 공을 개발한 후 MCC는 1875년 테니스를 위한 일련의 표준화된 규칙을 제정했다.